[어게인뉴스=정부경 기자] 허위 재무제표를 믿고 투자했던 소액주주들이 결국 법정에서 승소하면서, 기업 회계 부정에 따른 투자자 피해가 더 이상 '개인 책임'으로만 남지 않는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022년 STX조선해양 소액주주 300여 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약 55억 원을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은 회사가 선박 제조 진행률을 조작해 매출총이익을 부풀리고, 이를 바탕으로 허위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한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외부 감사인인 삼정회계법인이 '적정 의견'을 내면서 투자자들이 왜곡된 정보를 그대로 신뢰하게 만든 구조가 형성됐다.
결국 투자자들은 실제보다 부풀려진 기업 가치를 믿고 투자 결정을 내렸고, 손실은 고스란히 개인에게 전가됐다. 금융시장에서는 "분식회계의 본질은 투자 판단을 속이는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그 책임을 명확히 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통제 있어도 무용지물"…경영진·감사 책임 동시 타격
이번 판결은 단순히 배상 규모를 넘어 책임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재판부는 대표이사의 책임과 관련해 "제도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내부통제가 작동한다고 볼 수 없다"며 실질적인 운영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형식적인 내부통제 시스템으로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특히 회계법인에 대해서도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경영자의 진술이나 제출 자료를 그대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며 "업종 특성과 경영상황을 고려한 적극적인 검증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은 외부 감사인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한 사례로, 향후 회계법인의 법적 리스크가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금융 전문가도 "이제는 기업뿐 아니라 감사인까지 '공동 책임 구조'로 묶이는 흐름"이라며 "회계 검증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투자자 권리의 실질적 강화다. 시장에서는 "소액주주가 집단적으로 권리를 행사해 실질적인 배상을 받아낸 사례는 상징성이 크다"며 "향후 유사 사건에서 소송이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제도적 한계도 여전히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증권집단소송 제도는 요건이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려 피해 구제 속도가 늦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보다 신속하고 실효적인 투자자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이번 판결은 '분식회계 피해는 투자자 책임'이라는 기존 인식을 뒤흔든 사건으로 평가된다. 기업이 만든 왜곡된 숫자에 속아 발생한 손실에 대해 법원이 명확히 책임을 물으면서, 자본시장 질서와 투자자 보호 기준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